어른의 영어는 달라야 한다. -영어의 쓰임

한민족의 공식 언어는 한국어이다.

국립한글박물관 훈민정음개요 전시

 

 출근길 우연히 라디오를 듣게 되었다. 진행자가 청취자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기 소개하라면서 ‘Let me introduce myself.’라는 순간부터 뭐지 싶었다.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덧붙이기는 했지만, 일단 ‘Let me introduce myself.’라는 표현 자체는 나를 소개할 때 쓰는 표현이고 상대방에게 물어보는 표현이 아니다. 더 가관은 그다음부터 청취자가 말할 때마다 ‘uh-huh’거리는데 진짜 불편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말처럼 어디서 영어는 배웠는데, 불완전한 상태로, 너무 쓰고 싶었던 것 같다. 라디오는 불특정다수가 듣는 어떤 면에서 공식적인 말하기이다. 그런데 한국어가 아닌 영어를 섞어 쓴다는 것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고, 맥락에 맞지 않는 영어는 더 불편하다. 

 그러면서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국회 청문회가 생각났다.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도록 생중계되는 청문회에서 한 국회의원이 영어로 질문해서 위원장이 제지하기까지 했다. 제일 핵심은 한국인을 위한 청문회이다. 한국인이 보는 청문회이기에 기본적으로 한국어로 진행하는 게 맞다. 그리고 한국어 외에 다른 외국어가 필요할 때는 통역이 있다. 

 

 한국인에게 모국어는 한국어이지 영어가 아니다. 영어로 의사소통 하고 싶거나 일을 하고 싶으면 공식 언어가 영어인 많은 나라가 있다. 그런 나라에 취업해서 영어로 의사소통하고 일하면서 살면 된다. 그러나 한국어를 쓰는 나라에 산다면, 특히 공식적인 자리라면 한국어를 쓰는 게 바르다고 생각한다. 외국인이라도 한국에 오래 살았는데, 한국어를 전혀 못 한다면 그게 부끄러워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사대주의는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조선 시대 그 전부터 내려오던 우리 고유의 문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선을 건국한 이들은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로 시작해서 유교와 한자를 문화의 중심에 놓았다. 백성들을 어여삐 여긴 세종대왕이 여러 신하와 문자로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을 만들었지만, 이는 공식 언어가 아니었다. 

 공식 언어가 아니어서 조선말 개국 정책을 하게 되었을 때, 많은 서구 열강이 조선을 독립적인 나라로 보지 않았다. 공식 언어가 중국어였기에 중국의 속국 정도로 취급했다고 한다. 이는 조선말 한국에 살던 언론이 프레더릭 맥켄지 책에 잘 묘사되어 있다. 

 

 독립 국가의 조건은 국민 영토 주권 3요소이다. 하지만 선진국은 더 나아가 언어를 포함한 고유의 문화도 독립된 나라의 자부심으로 본다. 모국어가 있다는 것은, 특히 문자 언어가 있다는 것은 대단히 자부심을 품을만하다. 한국은 자체적으로 어떤 언어와 닮지 않은 표기 방식을 가진 문자 언어가 있다.

 유럽권의 많은 문자 언어는 페니키아 문자가 바탕을 이루고 있고, 동아시아는 중국의 한자에 바탕을 둔 문자 언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고유의 표기법, 그것도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뜬 과학적인 문자 언어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세종대왕 시절 만들어진 문자는 세계 거의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다. 

 

 그러던 것이 해방 후 사대주의자들이 간소화 파동(https://www.hangyo.com/news/article.html?no=78201)과 성조를 없애면서 원래의 모습에서 많이 달라졌다. 용비어천가를 보면 점으로 평성, 거성 입성과 같은 성조를 표기한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의 사대주의로 한자어가 70퍼센트 이상인 한국어에 순우리말을 늘이려는 노력이 한때 있었다. 일제강점기 한글학회 학자들은 팔도 사람을 모아 다양한 그들의 말 속에서 우리말 어휘를 찾으려 했고, 해방 후에도 순우리말 표기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었다. 

 

 이런 혼돈의 시기가 정리되기 전에 영어 사대주의가 시작되었고, 이제 한국어에 영어 외래어를 섞어 쓰면서 원래 한국어 단어를 잃어 가는 중이다. 

 프랑스 정도로 자국어를 지키는 노력까지 바라지 않는다. 다만 지나친 외래어 남발에 대해 관련자는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닌지 생각한다. 일본처럼 번역청이 있어서 제대로 번역이 작동하지 않더라도, 번역되는 출판물에 대해 지나친 외래어가 없는지 점검하는 사업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원래 번역에는 다음과 같은 인재가 필요하다. 원문의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 원문의 내용을 번역할 언어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 번역 후 번역한 나라의 언어에 적절하게 고쳐줄 사람 등이다. 이런 전문가들을 통해 외래어에 의해 모국어가 오염되지 않고 세계의 다양한 좋은 정보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민족은 한국어를 자부심을 품고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쉽게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문자가 세계 어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다른 나라와 만나는 순간에는 더욱 이런 자부심을 보여줄 수 있어야 독립된 나라의 품위가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조선 시대 사대주의자들은 명을 지지하다 청의 심기를 건드려 병자호란을 발발하게 했다. 그리고 러시아에 붙었다가, 일제의 지배를 받을 때는 일본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해방 후에도 미국의 52번째 주가 되고 싶어 했다. 이런 류의 사람이 한국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하는 자리에 있으면 조선말과 같은 상황이 또 반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역사를 공부한 이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작성 2025.12.26 17:17 수정 2025.12.2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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